오늘은 짠테크 내일은 플렉스(김경필)

아파트가 든든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cosy corner 2023. 11. 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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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공급이 늘면 가격은 하락하고 반대로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은 상승하는게 상식 아닌가? 하지만 주택시장에서는 이런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택시장이 지닌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1. 첫 번째 특징 : 주택의 가격 하방 경직성 

  주택에는 가격 하방 경직성(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내려가야 할 가격이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있다. 만일 아파트가 단순한 투자대상이라면 시장에서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줄만한 악재가 등장했을 때 손해를 무릅쓰고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서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투자대상이기 이전에(1주택자의 경우에는) 현재 자신이 거주하는 주거공간 그 자체다. 살고 있는 집을 시장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쉽게 팔아 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아파트는 웬만한 하락요인이 아니라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매우 강하다.

  만일 1,000세대 아파트 단지에서 최근 한 세대가 신고가인 10억 원에 매매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때부터 나머지 999세대는 모두 자신들의 집 가격이 최소한 10억 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면 곧바로 그 가격에 닻 내리기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향후 집을 팔 때 매도가격의 시작점은 최소 10억 원을 넘는다.

  주식이나 외환거래는 거래량 자체가 매우 많고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시시각각 변하지만 주택시장은 그만큼 시장 효율성(자산시장에서 시장 기능이 가격결정기구로서 정상적인 작동을 하는 정도, 즉 시장정보가 가격에 빠르게 반영되는지 여부)이 낮은 편이다.

 

  2. 두 번째 특징 :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간과 환경의 희소성

  대한민국은 인구에 비해 국토가 좁은 나라다. 국토의 16.7%가 도시고, 그곳에 전체 인구의 92.1%가 살고 있다. 특히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인 50.4%가 살고 있다(2021년 국토부 자료 기준). 만일 주택을 공급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바라는 공간과 환경, 그리고 인프라를 그대로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이 단순히 누워서 잘 수 있는 곳이라면 집을 지을수록 실제로도 공급이 늘어나겠지만, 주거란 공간과 환경의 개념이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간과 환경은 포화 상태이며, 따라서 새로운 주택을 공급한다고 해도 동일한 공간과 환경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공급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간과 환경은 당분간 희소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3. 세 번째 특징 : 마땅치 않은 안전자산

  우리나라는 원화를 사용하는 국가다. 주택가격 폭락론자들은 1990년대 일본의 집값 폭락과 금융위기 때 미국의 집값이 하락한 사례를 주로 인용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IMF 위기를 맞은 1998년 전국 집값이 12.4%, 전셋값이 18% 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코스피 지수가 최대 42% 하락한 것에 비하면 집값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셈이다.

  수출에 70% 가까이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 특성상 원화는 대외 변수에 큰 영향을 받으므로 안정적이지 않으며 위기 때마다 상대 가치가 들썩일 수밖에 없다. 또 안보 위협도 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없어도 원화 자체는 안전자산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위기 시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여러분이라면 10억 원을 어떤 자산에 넣을 것인가? 아니, 10억 원이란 부를 어디에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일단 7억 원은 전세금으로 사용해야 한다. 주거지를 어디에든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경제위기 상황에서 나머지 3억 원은 어디로 대피시킬 것인가? 원화인 현금으로 바꿔 은행에 넣어두면 안전할까? 일본과 미국의 경우 자국 화폐가 엔화와 달러화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택을 처분하고 받은 돈을 일단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다고 하더라도 이 통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글로벌 시장에서 안전자산이다. 다시말해 집을 팔고 받은 돈을 임시로 안전하게 숨길 곳이 있다는 뜻인데, 이런 이유로 인해 도리어 큰 폭의 집값 하락이 이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진 2015년 이후 다른 자산에서 나온 자금이 아파트로 숨어들었다. 이런 흐름은 2017년부터 시작된 아파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서 돈이 아파트라는 유일한 안전자산으로 몰린 결과다.

 

  그래도 아파트를 많이 짓는다면 가격이 안정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공급이 아파트값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아파트 공급은 계획한다고 공장에서 뚝딱 바로 찍어낼 수는 없다는 점, 그래서 공급을 계획하더라도 최소 10년은 걸린다는 점, 그 사이 주택 수요는 공급량을 뛰어넘기 일쑤라는 점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10년이란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 이유는 3기 신도시의 공급계획이 모두 사전청약 제도하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전청약이란 택지를 100% 확보하지 못했지만 본청약에 앞서 분양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사전청약 후 본청약까지 5년에서 최대 8년까지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전청약 후 입주까지 10년이 훌쩍 넘는 경우도 있었다.

 

출처 : [김경필의 오늘은 짠테크 내일은 플렉스], 김경필 著, 김영사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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